1945년 8월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명 '패트 맨(fat man)'이다. 원자폭탄 모양이 뚱뚱해서 그렇게 불렸다. 패트 맨은 나가사키시 439m 상공에서 폭발했다. 폭원만 140m이며 불덩어리 표면온도가 9000도, 지상의 투하 중심지도 4000도에 달했다. 도시는 한순간에 폐허가 됐고,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11시 2분을 가리킨 채 멈춰 버린 시계만이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다.
원폭이 떨어졌던 곳 인근에는 지금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비둘기 날개를 형상화한 '평화의 샘(분수)'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피폭자들은 한결같이 '물을…물을…' 외치며 죽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숨진 영혼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 분수를 설치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남성 동상이 서있다. 동상은 눈을 감은 채 오른 손은 하늘, 왼 손은 땅을 가르킨다. '평화의 상'이다. 원자폭탄의 위협과 평화, 그리고 영령들을 위로하는 의미가 담겼다. 피폭 10주년이 되는 날 건립했다. 평화의 상 옆 추념탑에는 종이학 수 천 마리가 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평화공원은 애초 나가사키형무소 우라카미형무지소가 있었던 자리다. 하지만 원폭으로 재소자와 교도관 모두 숨졌고, 뒤틀린 철골 구조물만 남았다.
'원폭낙하중심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폭이 떨어졌던 장소다.
눈에 띄는 검은 화강암 비석. '원폭순난자명봉안(原爆殉難者名奉安)'이라 쓰여 있다. 1961년에 세워진 이 추모비의 상자형 검은색 단 안에는 원폭희생자들의 명단이 들어 있다고 한다.
피폭 당시의 지층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지층 속에는 마치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놓은 선사시대의 패총같이 여러 물건들이 흙 속에 박혀 있다. 땅이 무너져 내린 듯한 지층 속에서는 당시 실생활에서 쓰던 컵이나 그릇, 열쇠 등의 생활용품들이 찌그러지고 깨진 채로 흙 속에 파묻혀 있다. 원폭에 의해 파괴된 집의 벽돌과 기와도 휩쓸려 들어와 있고 고열에 녹아내린 유리도 흙 속에 매몰되어 있다.
공원 한 켠에 서 있는 검은 색의 모자상은 처연하다. 동상 이름은 '1945.8.9. 11.02'이다. 원폭이 떨어진 시간이다. 모자상의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있다. 아기는 어머니 품에 제대로 안기지 못하고 팔 한쪽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죽은 아이의 시신을 안고 내려다 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하염없이 슬프다.
원폭낙하중심지공원에서 원폭자료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곳곳에 추모비가 일행을 맞는다.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다. 추모상은 한결같이 평화를 갈구하는 모습이다.
종이학을 품은 백색의 소녀상,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10년 후에 방사능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사키 사다코(1943~1955)라는 소녀의 상이다.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 사다코는 죽음을 앞두고 종이학을 접었다. 사다코는 1000마리의 학을 모두 접으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망으로 종이학을 접었지만 결국 종이학 600마리 정도를 접다가 생을 마감했다.
일본에서는 장수의 심벌이기도 한 종이학을 1000 마리 접음으로써 병의 쾌유와 장수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사다코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일본 국민들이 소녀를 가엽게 생각하여 소녀가 미처 다 접지 못한 학을 접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접은 종이학을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전해주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발걸음을 옮긴 원폭자료관 곳곳에도 종이학이다.
자료관은 원폭 당시 처참했던 사진과 물건 등이 전시돼 있다. 유리는 녹아내렸고, 철도 녹아내렸다.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불타고 무너졌다. 거리에는 시체가 뒹굴었고 시신은 까맣게 타 버렸다. 11시 2분을 가리킨 채 멈춰 버린 시계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이 자료관에는 원폭으로 인한 폐허 이외에도 원폭이 만들어진 과정과 미국이 이를 투하하기까지 결정 과정, 그리고 피폭자들의 참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패트 맨(fatman)'이라 불린 원폭의 모형 또한 이곳에 전시돼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이 있다.
옆으로 6개씩 모두 12개의 직선으로 된 유리 기둥이 바깥과 연결돼 하늘을 향하고 있다. '평화가 전 세계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설명이다. 정면 선반에는 원폭 사망자의 이름이 등재된 명부가 봉안돼 있고, 위쪽으로 연결된 유리기둥 바깥에는 물이 채워져 있다. 원폭 사망자들이 애타게 찾던 '물'이다. 이곳은 밤이 되면 약 7만개의 등불이 밝혀진다. 7만은 1945년 12월말까지 추정되는 사망자 수다.
'우리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고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를 교훈삼아 핵무기 없는 영원히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을 맹세한다.' 추도 평화기념관을 알리는 '리플릿'에 명시된 그들의 다짐이다. 평화공원이나 원폭낙하중심지 공원 등을 조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핵평화운동의 맥락에서 피폭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는 각오만 있을 뿐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로서의 반성은 없다. 전쟁을 일으켰고,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화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가해자의식'이 '피폭의 기억'이라는 피해자 의식에 희석돼 버렸다. 일본이 원폭 피해자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가해자라는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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