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6)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방소멸 '지방소멸', 쉽게 쓰이지만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단어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없어진다는 게 소멸(消滅)의 사전적 의미다. '지방소멸'은 2014년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전 일본 총무대신)가 자신의 저서 '지방소멸'이라는 책에서 처음 도입한 개념이다. 마스다는 현재 인구감소 추세대로라면 일본은 앞으로 30년 이내 고령화와 20~39세 여성 인구 감소로 대부분의 지방 사회가 사라진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한국에서는 한국고용정보연구원이 2016년 '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에서 마스다의 지방소멸 지표를 빌려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발표하면서 지방소멸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 수와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의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소멸위험지수 값이 .. 귀농/귀촌의 현실 지방소멸, 무섭지만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대표적인 농도인 전남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전남은 농림어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높다. 전남의 농어촌을 중심으로 고령화는 심화된 상황. '지역 내 총생산(GRDP)' 기준 7.9%(경상가격 기준, 2020년)로 전국평균(1.9%)을 크게 웃돈다. 고령화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고 지방소멸 위험도 심각한 수준이다. 22개 시·군 중 17개 시군이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 읍·면·동으로 범위를 좀 더 세분화하면, 323개 읍·면·동 중 85.4%인 276곳이 '소멸위험' 지역에 속한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276곳 중 220곳은 '소멸고위험'이고, 56곳인 '소멸위험진입' 단계다. 전남 기초단체에서 귀농·귀촌·귀어 등 인구.. 고약해 조선시대 '고약해(高若海)'라는 인물이 있었다. 별명이 아니다. 실제 인물이며 두루 벼슬을 거친 문신이다. 그는 태조부터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섬긴 충신이다. 도 관찰사와 사헌부 대사헌 등을 거친 명재상이기도 하다. 고약해는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아닌 건 아니다'라는 직언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고약해가 이름값을 제대로 발휘한 시기는 세종 때다. 그가 호조 참판이었던 세종 22년(1440년) 3월의 일이다. '수령육기법(지방 수령의 임기를 6년으로 정하는 법)'을 놓고 어전회의에서 세종과 고약해가 논쟁을 벌였다. 세종은 임기를 6년으로 늘리려 했지만 고약해는 반대했다. 고약해는 '수령 임기가 3년에서 6년으로 늘어남으로써 수령으.. 10월26일 10월26일은 1년 중 299번째 날이다. 이날은 유독 우리 역사를 바꿔놓거나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많은 날이다.'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더 유명한 '명량대첩'이 1597년 10월26일에 끝났다. 13대 133의 싸움, 동서고금을 통해 전무후무한 일대 혈전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아군 피해는 사망 2명 부상 3명에 불과했다. 적군은 1만2000여명 사상에 31척 격침, 92척이 대파됐다. '전세'를 바꾼, 그야말로 기적 같은 승리였다.312년 뒤 1909년 10월26일은 조선 침략의 원흉, 초대 조선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피살됐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을사늑약을.. 조선업 인력난 한국 조선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조선산업을 주도했다. 당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거제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고'라거나 '조선소 일한다고 하면 먹고살 만하겠구나'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조선업의 위상은 높았다.2010년대 이후 달라졌다. 매출액이 급감했고, 2018년에는 매출 34조9000억원으로 전성기 때의 40%대 생산실적에 그쳤다. 많은 숙련공이 조선소를 떠난 것도 이즈음이다. 조선업 총고용자료를 보면 1990년 5만4000명에서 2005년 10만4000명, 2015년 20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2021년에는 9만2000명 수준이다.2015년 말 13만3346명에 달했던 조선업 하청인력도 2022년 2월 기준 5만1854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임금수준도 비슷.. '다름'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 필요하다-퀴어축제를 바라보는 시각 '퀴어(queer)'. 사전적 의미는 '기묘한' 혹은 '괴상한'이라는 의미다.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경멸할 때 사용됐다. 그러나 80년대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전개되면서 본래의 부정적 의미가 사라졌다. 이후 '퀴어'는 동성애자는 물론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 단어로 사용됐다. 성 소수자는 사회적 다수인 이성애자와 구분되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신체 등을 지닌 이들이다.'무지개 깃발'도 있다.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단어다. '성 소수자의 다양성' 이란 의미가 담겼다. 처음에는 성 소수자 퍼레이드 등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다.'퀴어문화축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성 소수자들의 행사다. 전세계적으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의 한 종류.. 울지마 엄마,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테니까-팽목항 '기억의 벽' 벌써 1년. 변한 건 없는데, 기억은 흐릿해진다. 그러나 이웃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을 들추게 한다. 팽목항의 '기억의 벽'이다. '기억의 벽'은 착한 이들이 오롯이 내려놓은 마음이 담긴 타일로 채워졌다. 원래 천개의 타일이 목표였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마음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유가족의 애끓는 기억에 시골 산골 아이의 소박한 기억까지 더하고 더해졌다. 그렇게 4656개의 '기억'이 모였다. 자식을 잃은 애 끊는 어미의 기억부터 가슴 한켠을 저리게 하는 착한 이들의 기억,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기억까지 '기억의 벽'은 다양한 기억이 가득하다.자식을 잃은 애 끊는 어미의 기억은 슬프다. '엄마 눈물 모아 하늘에 있는 엄마딸..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며 참 오래전에 썼던 칼럼이다. 158명이 어이없는 죽음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갔떤 이태원참사. 그때 썼던 나의 칼럼을 다시 옮겨본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 뛰는 물가 나는 금리에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작금의 나라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지난 10월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자그마치 158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3.2m의 좁은 골목에, 그것도 내리막길에 수백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희생자 일부는 서 있는 상태로 압박받아 숨지기도 했다. 외국인도 26명이 숨졌고, 부상자도 196명에 달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였고, 미리 막을 수 있었기에 가슴 아팠다. 무엇보다 희생자 대다수가 이른.. 이전 1 ··· 10 11 12 13 14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