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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일본 우경화의 시작 '쇼인신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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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吉田松陰ㆍ1830~1859)은 일본 우경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정한론(征韓論)을 가다듬고,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창시했다. 그의 제자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로 성장했다.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쇼인의 제자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보면서 요시다 쇼인을 주목하는 이유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여정은 힘들었다. 목적지는 야마구치현의 하기(萩), 쇼인신사가 있는 곳이다. 혼슈(本州) 최남단, 시모노세키(下關)로부터 100㎞ 떨어진 곳이다. 때론 대로를, 때론 산길을 버스로 2시간 넘게 달려야 했다. 진눈깨비도 여정에 힘듦을 보탰다.
하기시, 야마구치 역사의 심장이다. 19세기 까지 조슈 번(長州藩ㆍ지금의 야마구치)의 영주가 살았고, 번의 수도였다. 힘든 여정의 끝은 한적한 시골이었다.


'쇼인신사((松陰神社)'라 적힌 도리이(鳥居)가 웅장하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글씨다. 기시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에서 고위관료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에서 전쟁 물자를 관장하는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냈다. 기시는 일본이 패망한 뒤 고향 야마구치시에서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수감되기도 했다. 기시는 1957년 총리에 올라 미ㆍ일 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하면서 우익득세의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도리이 옆에 '쇼인신사((松陰神社)'라 적힌 커다란 돌이 또 서있다.

 

요시다 쇼인의 글씨다. 쇼인이 살아생전 쓴 글씨 중' 松陰神社' 한자 한자를 모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쇼인신사는 요시다 쇼인이 세상을 떠난지 100년을 기념해 지었다. 1959년. 쇼인이 100년 뒤 자신을 기리는 신사의 표지석을 남긴 꼴이다. 일본인들이 느끼는 쇼인의 위상과 존재감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쇼인을 배우기 위한 일본인들의 발걸음은 이어진다. 그들의 진지한 눈빛, 또 한 번 쇼인의 위상과 존재감이 읽힌다.


경내 입구에 또 다른 돌비석이 눈에 띈다. 거대한 돌비석에 '明治維新 胎動之地(명치유신 태동지지)'라고 새겨있다. 메이지 유신 100주년 기념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의 글씨다. 사토는 아베의 정치적 롤모델인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으로 아베의 작은 외할아버지다. 전후 최장수(61ㆍ62ㆍ63대) 총리다. '태동지'는 경내에 있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쇼카손주쿠는 쇼인의 사설 학당이다. 시골 글방은 작고 조촐하다. 다다미방 2칸 크기의 목조건물이다. '史跡 松下村塾'라 쓰인 돌비석이 있다. 1994년 아키히도 일왕의 방문 기념비다. 쇼카손주쿠가 국가 사적임을 알려준다.


2년이 조금 넘는 세월, 쇼인은 이곳에서 제자를 키웠다. 80여명 가량이다. 조그만 강의실에는 쇼인의 초상화와 얼굴상이 놓여있다. 그 옆에 쇼인이 강조한 글귀가 대나무에 새겨있다. '많은 책을 읽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자기 자신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다. 이곳 하기시의 초등학교 2학년이면 이 글귀를 다 외울 정도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쇼인의 위상과 존재감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게 한 대목이다.


다른 방 벽에는 얼굴 사진이 세줄로 걸려 있다. 쇼인과 12명의 문하생이다. 구사카 겐스이(久坂玄瑞),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의 얼굴이 맨 위다. 구사카 겐스이는 쇼인의 매제이고, 기도 다카요시는 메이지 유신 3걸 중 하나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쇼인이 가장 아낀 제자였다. 아베 신조총리가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 이름 중 '晋'는 글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이름에도 '晋'가 들어있다. 그에 대한 아베 부자의 존경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줄에 걸린 인물은 거슬렸다.메이지 시대 문무의 핵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제1ㆍ5ㆍ7ㆍ10대 총리)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제3ㆍ9대 총리),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등이다. 이토를 비롯해 이 보잘 것 없는 시골 학숙에서 참의(메이지 초기 정부 최고위직) 2명, 총리대신 2명, 대신2명이 나왔다.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로 불리고, 쇼인이 일본 우파에게 정신적 스승으로 통하는 이유다. 아베 총리도 거든다. 그는 2006년 의회에서 "쇼인 선생은 3년간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작은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 태동지였다"고 하기도 했다.

 

학숙 바로 뒤편에는 쇼인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쇼인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역대 일본 왕과 총리가 이곳을 다녀갔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3년 8월 이곳을 참배했다.

요시다 쇼인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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