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동구와 서구 등 '구(區)'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다. 1973년 7월1일이 그 시작이다. 구가 생기기 전 광주는 출장소와 동(洞)으로 구성됐다. 6개 출장소와 45개 동이었다. 광주에서 구의 시작은 동구와 서구부터다. 기존 4개의 출장소를 폐지하고 석곡·지산의 2개 출장소만 남기는 한편 동구와 서구로 나누는 '구(區)제'가 시작됐다. 1980년 4월1일에는 석곡·지산 출장소를 폐지하고 북구가 신설돼 광주는 3개 구로 운영됐다. 직할시로 승격된 직후인 1988년 송정시와 광산군이 광주로 편입되면서 '광산구'가 생겼다. 이후 1995년 3월1일 서구에서 남구가 분구되면서 현재의 5개 자치구에 97개 행정동이 운영되고 있다. 광주시 홈페이지에 나온 '광주의 역사'다.
소위 동서남북으로 나누는 '방위지명'은 광주만의 일은 아니다. 서울을 포함해 5개 광역시 모두 방위지명을 가지고 있다. 서울시에는 동·서·남·북구는 없지만 중구가 있다. 부산과 대구에는 동·서·남·북·중구가 모두 있다. 인천과 대전에는 동·서·중구가 있다. 울산에는 서구를 제외한 동·남·북·중구가 있다. 그런데 동서남북이 들어가는 방위지명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의 잔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1914년 '창지개명(創地改名)'과 관련이 깊다. 본래 부(府)·군(郡)·면(面)이던 행정구역을 일제가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때 동서남북 방위명을 딴 지명이 쏟아졌다. 시골에 동서남북이 들어간 지명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광주는 조금 다르기는 하다. 광주에 '구(區)제'가 적용된 것이 1973년으로 일제와 무관한 시기다. 그러나 동서남북이 들어간 지명이 일제식 방위지명인 것만은 사실이다. 행정구 이름을 정할 때 이렇다 할 고민 없이 광주시청을 중심으로 동쪽은 동구, 서쪽은 서구로 정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동구에서 북구를 분구할 때도, 서구에서 남구를 분구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 오래전부터 아무 의미 없는 동서남북이 들어간 방위지명을 사용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도시 면적이 확대되면서 구 이름이 지금은 실제 방위와도 맞지 않기도 하다. 광주 서구가 대표적이다. 광산구가 편입됐고, 수완지구 등에 택지가 생기면서 광주 서구는 오히려 방위식 지명으로 친다면 중구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다고 서구를 중구로 바꾸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든지 지역의 특색을 살린,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구 명칭은 넘치고 넘친다.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화순이 좋은 예다. 2019년 주민투표를 통해 북면을 백아면으로, 남면을 사평면으로 바꿨다. 인천시 또한 2018년 일제식 방위지명인 남구 명칭을 미추홀구로 바꿨다. 세종특별자치시는 도시 출범 당시부터 행정구역, 주거단지, 도로명, 학교명에 한글 이름 1066개를 마련해 '한글문화수도'라는 지역 특색을 살렸다. 대구에서도, 다른 기초단체에서도 일제식 방위지명을 바꾸자는 움직임은 수두룩하다. 유독 광주만 그동안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쉽다.
현재의 동서남북 방위지명을 사용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지명을 바꾸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주민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색없는 동서남북 지명을 사용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태봉(광주 북구에 있던 왕자의 태를 묻었던 산)' ,'제봉(광주출신 의병장인 고경명 장군의 호)', '충장(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의 호)', '금남(정묘호란때 활약한 정충신의 군호)' 등등 지역의 정체성이 가득한 명칭도 넘쳐난다. 광주도 개성없는 동서남북의 지명이 지역 정체성을 담은 멋진 구 이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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