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기억이다. 그땐 참 용감했어는데. 어느덧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그때를 다시회상해보는 글이다. 글은 동료이자 선배인 광주드림 최정희 국장이 썼다. 나의 이야기이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촛불이 번지자 보수세력은 어버이연합을 앞세웠다.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다며 관제시위를 벌인 어버이연합에 전경련, 국정원 등이 자금을 지원했다는 정황까지 밝혀졌다.전국화물연대의 집회가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던 200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전·의경 어머니회’라는 단체였다.화물연대가 파업하고, 집회를 여는 현장마다 이들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우리 아이들 너무 괴롭히지 마라”는 외침과 함께.“제발 우리 자식들을 때리지 마세요” “광주시민은 기대합니다 평화적 집회시위” “불법 폭력시위에 사회가 멍들고 있어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도 내보였다. 화물연대 집회 현장마다 ‘전·의경 어머니회’가 출동하니 미심쩍은 게 당연했다. 시위 경험이 많지 않을 어머니들이 정갈(?)하게 만들어진 팻말까지 들고 나왔다. 당시 본보 안현주 기자가 홍성장 기자에 이런 말을 했다. “형, 집회 때마다 나오는데 이상하지 않아?”홍 기자도 의심이 들었다. “느낌은 분명 동원인데.” 취재를 해보기로 했다. ‘동원의 증거’를 잡아야 했다.
2006년 3월26일 화물연대의 파업이 예정된 하남산단 삼성전자 광주공장에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공장 안엔 ‘전·의경 어머니회’ 회원 60여 명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홍 기자는 ‘잠임 취재’를 결심했다. ‘어머니’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어머니회 사이로 들어가 회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얘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만들고 난 뒤 한 회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 “아들 부대에서 오라고 해서.”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까지 보였다. “나한테 온 문서가 있다”고 하면서 전남지방경찰청이 산하 기동대와 방범순찰대에 보낸 공문을 꺼내 보여준 것이다. ‘의경 어머니 광산 화물연대 집회 참관 지시’라는 제목의 공문이었다. 내용엔 집회 장소, 시기 등과 함께 어머니들에게 반대시위 참석을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다. “참석하면 아이들에 특박을 주고, 휴가를 주겠다”는 내용까지. “이거다!” 홍 기자는 흥분했다. 그토록 찾았던 동원의 증거였다. 욕심이 났다. “이걸 가지고 가면 특종인데.” 그 공문 한 장이면 ‘전·의경 어머니회’가 관제시위에 동원됐다는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순간 엄청난 고민을 한 홍 기자가 결심했다. “들고 튀자.” 눈 깜짝할 사이 어머니회 회원이 들고 있던 공문을 들고 부리나케 뛰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어머니’들이 홍 기자를 쫓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기자와 어머니들간 추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저 사람 잡아.” 외침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쫓아왔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 하남산단 5번 도로에서 삼성 광주공장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밖에 있던 어머니들까지 “와~”하고 달려들어 홍 기자를 에워쌌다. 공문을 뺏으려는 수많은 손들. “그거 돌려줘”라고 하는데도 홍 기자는 공문을 쥔 손을 일단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버텼다. 어찌나 거세게 달려드는지 일부 회원들의 손이 공문에 닿았고, 그들은 닿은 공문을 막 뜯어갔다. 그래도 동원의 증거가 담긴 부분은 사수해야 했다. “아 이대론 안 되는데.” 막막하던 상황. 구세주가 나타났다. 당시 친분이 있던 동부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상황을 목격하고, “기자다”며 어머니들을 제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신히 어머니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났지만 “공문을 돌려달라”는 회원들은 집요했다. 마침 KBS 카메라 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좀 언능 찍어줘요.” 부탁을 했다. 상당 부분이 뜯겨져 나간 공문을 방송 카메라로 담았다. 영상을 다 찍은 뒤 그 공문마저 빼았겼지만, 이미 동원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확보한 뒤였다. 광주드림과 KBC가 이를 보도했고, YTN에서도 ‘전·의경 어머니회’를 경찰이 관제 시위에 동원한 문제를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전·의경 어머니회’의 실체도 드러났다. ‘전·의경 어머니회’가 실제 전·의경으로 복무하는 자식을 둔 어머니들만의 모임은 아니었던 것. 전·의경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봉사단체일뿐이었다. 그런데 실제 집회 현장에 출동한 전·의경들의 어머니인양 행세하며 화물연대 파업을 ‘폭력시위’로 몰아가려 했으니, 노동계의 반발은 당연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등은 전남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홍 기자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생각해보면 공문을 보여준 분에게 “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어본 것도 같다. 아마도 “안 된다”고 하니까 들고 튀었던 것이겠지. 여하튼 홍 기자의 나꿔채기 기술(?)로 ‘전·의경 어머니회’는 이후 집회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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